
# 독일인의 사랑_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 첫 문장 - 누구의 어린 시절이든 나름대로 비밀과 경이로움을 갖고 있다.
# 인상깊은 구절
10p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이라는 고요한 경이의 숲을 지나왔다. 그때 우리는 모든 감각이 마비될 정도의 행복감에 젖어 경이의 눈을 떴으며, 삶의 아름다운 현실이 조수처럼 밀려와서 우리의 영혼 위로 넘쳐흐르곤 했다.
12p 하지만 인생의 봄을 돌아보며,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고 추억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무더운 여름날에도, 쓸쓸한 가을날에도, 또 추운 겨울날에도 더러는 봄날이 찾아오지 않는가.
12p 기억의 처음 몇 페이지는 마치 집 안에 있는 낡은 성경책과 같아서, 앞부분의 몇 장은 완전히 빛이 바랬거나 닳아서 너덜너덜하기 일쑤이다.
15p 그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내게 다가왔던 일이다. 그 세계는 별의 세계나 제비꽃 향기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어느 부활절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27p 어떤 현자는 말했다. "나는 난파당한 배의 작은 파편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중의 몇몇 파편은 서로 부딪치며 한동안 한곳에 몰려 있다. 하지만 이내 폭풍이 몰려와서 파편들을 각기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 그리하여 파편들은 이 지상에서 다시 만나는 일이 없게 된다. 인간의 운명도 이와 마찬가지다. 다만 거대한 난파의 광경을 본 사람이 지금껏 아무도 없을 뿐이다."
28p 어린 시절의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그다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따뜻한 눈물 같은 비가 조금 내리고 나면 이내 사라지고 만다.
31p 내가 그녀를 언제 처음 보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기억의 암흑 속에서 아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희미한 그림자처럼 아련한 모습이었는데, 점점 윤곽이 분명해지면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마치 폭풍우 치는 밤에 홀연히 구름 베일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달처럼 내 영혼 앞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40p 어떤 사람이든 살아가는 동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먼지투성이의 포플러가 단조롭게 늘어선 가로수 길을 정신없이 걷는 것 같은 그런 세월을 한 번쯤은 경험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에 관해 떠올려 보면, 자신이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과 나이가 들었다는 서글픈 감정이 남아 있기 일쑤이다.
41p 그러고 보면 살에 내재된 불가사의한 요소와 고통이야말로 지상에 신이 편재하심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신의 뜻이 아니면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얻은 교훈이다.
45p 추억은 이렇게 끊임없이 밀어닥친다. 결국은 머리 위에서 파도가 부서지고 가슴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온 뒤에야, 지금껏 골똘한 생각에 잠기느라 숨 쉬는 것조차도 잊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58p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그녀가 무엇이며 그녀 안에 감춰진 것이 무엇인가를 본능적으로 알아보았다. 우리는 인사를 하는 동시에 서로를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있는 수호천사가 대답을 하지 않는다. 떠나간 것이다. 나는 그 천사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곳은 이 지상에서 단 한 곳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59p 내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나의 내면이 가난하고 공허한 것이 아님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다만 그 모든 씨앗을 싹트게 하고 꽃봉오리를 피게 하기 위해서는 햇빛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다.
77p 자기의 속마음을 숨겨야 하는 것이 이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관습이니 예의니 체면이니 현명함이니 처세술이니 하는 등의 이름을 붙여 우리에게 끊임없는 광대놀음을 요구하며, 우리의 삶 전체를 일종의 가장무도회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는가.
88p 타인이 갑자기 내 마음속 비밀 한가운데로 이토록 깊이 들어왔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모르던 일을 알고 있는데 대해 얼마나 놀랐던지 나는 한동안 멍해 있었다.
102p 사람이란 존재는 어째서 자신의 삶을 유희처럼 바라보는 것일까. 오늘이란 날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고,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은 곧 영원을 잃는 것임을 생각하지 않고, 어찌하여 사람들은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것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하루하루 미루고 있단 말인가.
125p 각 민족이 자기 나라의 위대한 인물에 대해 어떠한 점을 찬미하는가를 규명하고 이애하는 것은 일종의 예술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138p 나는 한동안을 망연한 상태로 있었는데, 아침에 했던 기도가 문득 떠올랐다. '절망보다 더한 불신은 없으며, 아무리 크거나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모두 신의 위대한 계획의 일부이다.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우리는 그 뜻에 순종해야 한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었다.
160p 하지만 오늘처럼 조용한 여름날이면 푸른 숲 속 자연의 품에 홀로 안겨, 저 바깥에 사람들이 있는지 아니면 이 세상에 오직 나 혼자 남아 외톨이로 살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추억의 무덤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기척이 나고, 죽어버린 줄로 알았던 생각들이 되살아 난다.
# 생각
마리아는 후작의 딸로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서 생활한다. 주인공 '나'는 어린 시절 마리아를 만나며 타인에게 타인이 아닌 형태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어른이 된 '나'는 마리아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수호천사로서 마리아를 가슴에 지니며 산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오고 마리아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삶에서 마리아는 한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정신적인 교감(종교, 철학, 감성)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둘의 사랑은 감미롭고 숭고하며 아름답다.
인생을 살면서 가끔 행복하고 그리운 추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내 삶이 아픔일지라도, 그때의 추억은 어두운 밤하늘에서 빛나는 여러 별들과 같다.
때때로 그 별들은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하고, 삶의 표식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그때의 경험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고, 지금의 나를 바탕으로 미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와 마리아의 사랑이 삶에서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하더라도 상관없다. 그 시절 그들의 삶은 서로가 있었기에 충만하였고,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경험은 다양한 형태의 빛깔을 지닌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나의 삶은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간다.
지금 이 순간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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