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방 이야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어느 날 어떤 결심을 하면 그 결심에는 자기 고유의 관성이 생기는 거야.

by 얼룩말책방 2020. 11. 6.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_밀란 쿤데라 저 

 

# 첫 문장 -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 인상깊은 구절

 

48p 그녀는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와 유사한 상황을 다시 찾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외국으로 떠나고 싶은 것이었다. 

49p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테레자의 망명 욕구를 토마시는 죄인이 유죄 선고를 받듯 받아들였다. 

54p 테레자와 함께 산 칠 년이라는 세월은 이제 과거의 일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이미 추억이 된 그 시절이 당시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 

61p 인간은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므로 체험으로 가정을 확인해 볼 길이 없고, 따라서 자기 감정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다. 

65p 테레자의 호흡이 한두 번인가 가벼운 코 고는 소리로 변했다. 토마시는 추호도 동정심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느낀 유일한 것은 위를 누르는 압박감, 귀향으로 인한 절망감 뿐이었다. 

87p 토마시는 테레자와의 만남이 여섯 우연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생각 때문에 불편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어떤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얽혀 있다면 그 사건에는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88p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ex 꼬냑을 가져다주려는 순간 들리는 베토벤 음악)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91p 우리의 일상적 삶에는 우연이 빗발치듯 쏟아지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소위 우연의 일치라고 부르는, 사람과 사건 간의 우연한 만남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우연의 일치를 우리는 대개 완전히 무심결에 지나쳐 버린다. 

98p 테레자는 그들보다 많이 읽었고 그들보다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몰랐다. 독학자와 학교에 다닌 사람의 다른 점은 지식의 폭이 아니라 생명력과 자신에 대한 신뢰감의 정도 차이다. 

187p 사비나에게 있어 진리 속에서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중없이 산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가 하는 것은 그 무엇도 더이상 진실이 아니다. 

187p 프란츠는 모든 거짓의 원천이 개인적인 삶과 공적인 삶의 분리에 있다고 확신했다. 개인적인 삶 속에서의 모습과 공적인 삶 속에서의 모습은 별개이다. 

201p 사비나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287p 토마시는 한 가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미소를 짓고, 모든 사람이 그가 철회서를 쓰기를 바라며, 자기가 의견을 철회한다면 모든 사람이 기뻐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굴함의 인플레이션이 그들 자신의 행동도 평범한 것으로 만들며 그 실추된 명예를 돌려주기 때문에 즐거워했다. 

310p 누구라도 친절하고 예의바르며 겸손한 사람을 마주하면, 그가 하는 말이 몽땅 사실이 아니며, 진지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매 순간 확신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마련이다. 믿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뿐만 아니라 훈련, 그러니까 잦은 경찰의 신문을 받았던 경험이 필요하다. 

357p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 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391p 저주와 특권, 행운과 불운, 사람들은 이런 대립이 얼마나 서로 교체 가능한지를, 인간 존재에 있어서 양극단 간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를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 

437p 인간 존재의 극과 극이 거의 닿을 정도로 서로 가까워져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천사와 파리, 신과 똥 사이에 더 이상 아무런 차이점이 없게 되는 꼴을 차마 보지 못하여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달려가 매달린 스탈린의 아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500p 어느 날 어떤 결심을 하면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조차 모르면서 그 결심에는 자기 고유의 관성이 생기는 거야. 세월이 흐를수록 그것을 바꾸는 게 더 힘들어.


# 생각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모두 인생을 각자의 관성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각자의 인생이 가벼움과 무거움이 공존하는 삶의 형태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조차도 무거운 상황을 가볍게 풀어내는 문체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읽기 편안하다. 그들의 삶 속에서 그 당시의 체코가 보이고, 자신을 넘나드는 인생의 갈림길도 보인다. 그 순간의 선택은 최선이었지만, 실행에 옮긴 순간의 후회와 절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의 삶은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각자에게는 너무도 진중하면서도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간다.

작은 몇몇의 우연이 모여서 내 삶의 필연을 만들 듯, 매 순간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몸소 느껴진다. 

결국 내 삶의 마지막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올지 모르지 않는가.

그래서 적어도 너무 하고 싶은데 갖가지의 이유로 미루어두는 것은 이제 안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가장 원하는 것부터 하나씩 해볼 것이다.

책 제목은 참으로 사랑 이야기 같은데, 내용은 사랑을 포함한 네 남녀의 자서전이었다.